[최종 완성본] 윗집 빌런과의 사이다 복수극 제10화
"그 혐의는 빼는 게 좋겠습니다." 경찰서 첫 조사에서 수사관이 내게 했던 위험한 제안
9화에서 빌런 측 변호사와의 살벌한 첫 통화를 마친 나는,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민사소송과 별개로, '형사 고소'라는 칼을 뽑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결심과 동시에, 나는 거대한 산과 마주해야 했다.
첫 번째 관문: 고소장 제출 전, '녹취록'이라는 지옥
'나 홀로 소송'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형사 고소의 핵심은 '증거'이고, 나의 가장 강력한 증거는 이 싸움을 결심하고 단 며칠 만에 모은 빌런의 폭언이 담긴 '녹음 파일'이었다. 며칠만 녹음해도 이 정도인데, 27년간의 모든 폭언을 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금 치가 떨렸다.
고소장을 쓰기 전, 이 녹음 파일을 먼저 글로 풀어쓴 **'녹취록'**으로 만들어야 했다. 이것은 소송 전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과 같이, 나의 주장을 공식적인 문서로 만드는 첫 단계였다.
"법원 앞으로 가면 녹취록 만들어 주는 데 많아요."
예전에 경찰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지만, 나는 직접 하기로 했다. 돈을 아끼려던 게 아니었다. 빌런은 말이 워낙 빠르고 사투리도 섞여 있어, 전문가라고 해도 저 특유의 뭉개지는 발음을 제대로 받아 적을 수 있을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단어 하나, 토씨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모든 녹음 파일을 직접 듣고 받아 적기 시작했다. 그건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수십 개의 녹음 파일을 하나하나 재생하며, 그 지옥 같던 욕설과 폭언, 비아냥거림을 내 손으로 직접 타이핑하는 작업. 그 단어들을 다시 마주할 때마다 그때의 모욕감이 되살아나 몇 번이고 주먹을 쥐었다 펴야 했다. 그렇게 며칠 밤낮을 씨름한 끝에, 나는 5페이지 분량의 '고통의 기록'을 완성할 수 있었다.
경찰서로: 모든 증거를 손에 들고
그렇게 완성한 5페이지의 녹취록을 품에 안고, 나는 드디어 형사 고소장을 최종적으로 완성했다. 그리고 9월 4일, 나는 다른 영상 증거 등은 추후 수사관이 요청하면 제출할 생각으로, 우선 가장 핵심적인 이 녹취록만 들고 직접 경찰서 민원실을 찾아갔다.
민원실 창구의 경찰관에게 서류를 건네고 "고소장 접수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드디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이 실감 났다.
경찰서에서의 첫 대면, 그리고 '예상치 못한 제안'
고소장을 접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담당 수사관으로부터 첫 '고소인 조사'를 위해 출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약속된 날, 나는 다시 경찰서로 향했다.
"조사 과정은 녹음할 수 있는데, 하시겠습니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나중에야 이때 '네'라고 대답했어야 했다는 약간의 후회가 들었다. 모든 과정은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는 것을, 나는 또 한 번의 경험으로 배우고 있었다.
한참 서류를 보던 수사관이 입을 열었다.
"고소인, 다른 혐의들은 증거가 확실해 보이는데... 이 '스토킹' 혐의는 입증하기가 좀 애매합니다. 이건 빼고 '모욕'이랑 '명예훼손'으로만 집중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전문가인 수사관의 제안이었다. 그 순간, 그 공간의 압박감 속에서 나는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이 얼떨결에 그러자고 대답했다. 하지만 경찰서를 나오는 내내 무언가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은 찜찜함을 지울 수 없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내가 무심코 동의해버린 그 '스토킹' 혐의야말로, 6화에서 경찰이 알려주었던 접근금지 같은 실질적인 보호 조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였다는 것을. 다행히 나중에는 법 개정 등으로 스토킹이 자동으로 인지되어 추가될 수 있었지만, 그 순간의 아찔함은 잊을 수가 없다.
형사고소, 양날의 검
사실 접수증을 받아들고 경찰서를 나올 때, 나는 별 기대 없이 나왔다. 형사고소에서 큰 결과를 바란다기보다, 그저 빌런에게 '너는 이제 범죄자일 수도 있다'는 겁만 줘도 성공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나의 짧은 생각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만약 형사고소 결과가 **'불송치(혐의없음)'**로 나오면, 진행 중인 민사소송에도 불리한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반대로 **'송치(혐의있음)'**가 되면 민사소송에서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형사고소는 그저 겁만 주는 도구가 아니었다. 민사소송의 향방까지 좌우할 수 있는, 아주 신중하게 사용해야 하는 '양날의 검'이었다. 이처럼 법적 다툼은 '합의' 과정처럼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는 형사고소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이다.
▶ 다음 화 예고
하나의 혐의가 빠졌다는 불안감과 형사고소의 무게감을 안고, 나는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에도 나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는, 이 지루한 기다림 속에서 빌런의 숨통을 조이기 위해 날린 **세 번째 민사소송, '계단 점거'**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겠다.